우리 대부분은 세상을 변화시키길 원한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가 세상을 바꾸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한다.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하든 변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이 세상에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변화”라고 하였다.

우리는 현실에서 변화 그 자체를 찾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고 긍정적인 것 즉, 강의 흐름에서 갈라져나온 인류의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변화를 찾는다.

다음으로, 우리 각자 스스로만으로는 아무도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위대한 변화를 촉발시킨 훌륭한 이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은 소수이다. 그것이 그들이 위대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이들도 혼자서 노력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빙산의 꼭대기이며, 산의 봉우리이지만, 절대 고립된 섬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길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이상주의자만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상주의자들이어야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만이 주관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스스로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옳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학자들이 되어야한다.

이러한 새로운 세상은 생각, 기도, 바램 등으로는 구현할 수 없으며, 오직 자유로운 의지와 효율적이고 좋은 의도를 동반한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봉사자들이 되어야한다.

이러한 길들을 조금 더 깊게 탐구해보자.

이상주의 Idealism
이상주의자는 무엇이 무엇이고, 무엇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간극을 직관할 수 있다. 이상주의자는 가슴으로 보고 가능한 미래를 상상한다. 즉,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이상주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고전 철학 학교의 빵과 물같은 비료가되어 르네상스나 미국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혁명의 뿌리가 되었다.

이는 정의를 원하는 모든 전사와 진정한 예술가, 종교적 리더들의 가슴에 있는 것이다.

이상주의 없이는 아무런 발전도 없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는 면에서의 발전이 아니라, 스스로 알고 인지할 수 있는 인간성의 발전을 말한다.

철학 Philosophy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철학자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따라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철학은 고집과 편견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철학자는 스스로의 의견에 애착을 갖지않고, 자신이 가진 지식을 항상 이성이 비추는 곳에 놓고 현실에서 시험한다.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자란 사회의 잔소리꾼들 같은 존재이며, 항상 무엇이 거짓인지를 가리키며, 동시에 윤리적인 삶의 본보기가된다.

봉사 Volunteering
오늘날 봉사는 물질적인 보상이 없이 이루어지는 행동으로 여겨지지만, 봉사(volunteering)의 어원은 라틴어인 “voluntarius”에서 온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의 자유로운 의지”를 뜻하며, 더 깊게는 “자발적으로 한 행동”을 뜻한다. 보상을 받고 안받고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의지를 자유롭게 해주어야한다.

보상을 바라는 마음에서 행동하는 것, 호감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 두려움, 아부, 또는 협박에 의해서 행동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낮은 본성에 지배당하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방법
이상주의, 철학, 봉사 등 세 가지의 길은 반드시 하나의 장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유용하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통합되어야한다.

철학을 반영하지 않는 이상주의자는 맹신을 위한 재료가 될 뿐이다. 다수의 맹신자들은 사실 고대의 영적 현실을 직관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를 원하지만, 철학의 반영과 이를 통한 내면의 탐구가 없으므로 그들의 노력은 개인적 경향과 선입견, 편견 등으로 인해 더럽혀진다. 그들은 스스로의 믿음을 이성의 영역안에서 시험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그들이가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이미지는 스스로의 주관적인 상상과 과거의 경험만이 반영 될 뿐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 역시 선한 의도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

철학이 관여한다면, 이상주의가 감지하는 가장 첫 번째 변화이자 가장 중요한 변화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하는 것이라는 걸 인식하게된다. 우리 스스로가 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의 평화를 꿈꾸지만, 우리의 이웃이나 부모와도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하고 포용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야유한다. 우리는 동물에 대한 동정을 이야기하지만, 같은 인간은 경멸한다.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중심에서 시작하며, 그 중심은 항상 우리 각자 자신이다.

봉사역시 철학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증상을 몇 번이고 진단할 수 있지만, 질병은 절대 치료하지 못하는 의사와 같이, 끝없는 헛고생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 어떤 발전이나 진보도 없이, 우리가 허기, 가난, 약물중독등과 끝없이 싸우고 전쟁을 치르는 이유이다.

부처나 예수, 마르틴 루터킹, 간디 등과 같은 훌륭한 리더들이 인류를 돕고자할 때, 그들은 스스로를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특정한 지식을 전달하려한다. 즉,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낚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그에게 고기를 던져주는 것보다 항상 더 낫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봉사가 없는 이상주의와 철학은 몸이 없는 영혼과 같다.

봉사없는 이상주의와 철학은 여전히 선한 의도로 남을 수 있으나, 실생활에 적용할 수 없는 비실용적인 것이 되고만다. 전혀 실용적인 결과로 이어지지않을 것이며, 화려한 백일몽 그 이상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의 힘은 확실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상, 철학 및 봉사를 통합할 줄 아는 선한의도를 가진 개인, 집단 또는 공동체들의 효율적인 행동없이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영어 원본

Photo by Rod Lo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