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에 따르면 “철학”이라는 단어는 피타고라스에게서 왔다고합니다. 그는 다른 이들이 그를 현자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라 칭했습니다. 물론 철학 즉, 지혜에 대한 사랑은 피타고라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개념은 아닙니다. 역사상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어느 때에도 철학자들은 항상 존재했습니다. 진리와 지혜에 대한 탐구는 모든 문명에서 다수의 다양한 형태로 행해져왔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및 ‘어디로 가는가?’등과 같은 원론적인 질문들은, 삶, 자연, 우주에 대한 신비와 함께 지난 수천년 동안 우리의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질문들이 촌스럽고 순진할 뿐이라 여기지만, 반대로 이를 존재론적이고 영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들은 원론적인 만큼, 항상 보이지 않는 뒤에서 존재해 왔습니다.
철학이 사랑을 뜻하는 “Philo”와 지혜를 뜻하는 “Sophy”가 합쳐진 개념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따라서 철학은 단순하게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이 용어의 이렇게 깊은 의미를 놓치기는 매우 쉽습니다. 매우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그만큼 그 가치가 사라지기 쉽습니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철학을 직업으로써 배우거나, 즐거운 취미로 여겨 배우는 것도 아니고, “철학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과 행위의 특정한 상태이며 삶의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현명한 남자나 여자의 이미지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그들은 단순히 지식이 많거나 지적인 사람들인가? 아니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삶의 높은 수준에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그러한 남자나 여자를 선, 정의, 진리, 미의 완벽한 예로써 상상하지 않는가?
그러한 개인들은 분열의 환상과 스스로의 에고를 극복하고, 훌륭한 것 즉, 지혜를 다른이들에게 전달하는 이들이 아닌가? 다양한 문화에서 이를 “범우주적인 사고(Cosmic Mind)”라고 칭하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높은 수준의 지성을 뜻합니다. 코스모스(Cosmos)라는 용어 자체도 혼란을 뜻하는 “Chaos”와 성스러운 지혜를 뜻하는 “Theos”가 합쳐져 우주를 구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혜가 훌륭하면서도 좀잡을 수 없는 성질을 가졌지만,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현실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걸 인식하게 끔 할지라도, 이러한 개념을 인지하고 이 개념과 특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지혜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의무나 다르마(Dharma)와 같은 의식의 진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와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데 있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삶-자연-우주에서 보이는 현상을 넘어, 초월적인 지성 즉, 불꽃을 피우는 것은 무의식의 잠에서 깨어나는 느낌과 같습니다. 추측에 근거한 믿음과 의견의 단면을 떠나, 여러 형태의 환상에 대한 수직적 관찰에서 하나된 삶의 심오한 깊이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도의 고대 전통에 따르면, 카마-마나스(Kama Manas) 즉, 계산적인 정신이 아닌 마나스(Manas) 즉, 순수한 정신이 분별력을 갖게하는 비베카(Viveka)를 가지고 있다고합니다.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는 것,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단순히 설명서나 기록을 따르는 것으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낮은 정체성의 가면인 성격의 수준에서 이러한 자아의 의식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신의 성장에 달렸습니다. 이는 우리 영혼의 수준이며, 그 자체로 스스로의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외적 현상세계에서 표현되는 것에 대한 내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보이는 것만큼 실존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형태의 내적인 삶에서 철학 즉, “지혜에 대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철학은 정신의 상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더 높은 수준 즉, “선”이라는 것에 대해 영혼이 눈을 뜨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며, 특정한 의견이나 외부의 변화에 가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안락함을 욕망하는 유혹에의한 나태함이라는 태풍 속에서도 평온 즉, 중심을 유지할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철학자가 되는 것은 내면의 나침반을 만드는 것이고, 이는 오늘날의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며, 모든 상황을 직시하면서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신경쓰면서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소원의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선을 향한 희망과 상상을 잃지 않도록 사는 것이며, 훨씬 더 훌륭한 그 어떤 것에 일부가 된다는 자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에 사랑과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철학자라면, 당신의 가슴과 머리가 이미 그것을 알고 있고 원하고 있다면, 당신은 매우 소중한 선물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무라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오늘날은 그 어느때보다도 철학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