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많은 이들이 복잡한 문장과 이론들과 함께 어려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연상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철학의 진정한 목표, 즉 우리를 인생의 간단함과 명료함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철학의 정신과 상반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철학의 간단한 정의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단어와 정보의 홍수 아래 무너지고 있는 복잡한 문화입니다. 이럴 때는 단어의 원래 의미로 돌아가는 것이 조금 더 명확한 이해를 돕기도 합니다. 철학이라는 말의 기원은 그리스에서 옵니다. 피타고라스가 처음으로 이 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자신이 현명한 인간이 아니라 단지 지혜를 사랑하는 인간, 즉 “철학자 (Philosophos)”라고 말 했다고 합니다. 철학은 그러므로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혜 (Sophia)’라는 말 또한 본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인식과 지각이 아니라, 자연의 한 가지 지혜를 일컫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스나 인도, 이집트와 같은 고대 문명에게 자연이란 신성한 지혜의 발현이었고, 이 지혜의 원칙들이 바로 자연의 법칙으로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코스모스’라는 단어가 바로 이러한 관점을 내포합니다. 코스모스는 ‘카오스’라는 원시적 물질과 ‘테오스’라는 신성한 질서의 합을 의미합니다. 코스모스는 자체적 원칙들로 구성된 지적 질서를 갖춘 세계로, 그 안에 임의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그리고 지혜는 다양한 세계의 표현을 하나로 통합하는 본질입니다. 영혼이 물질로 옮겨갈 때에는 곧 하나의 통합성이 다양성으로 분화됩니다. 그러므로 물질에서 영혼으로 귀화할 때, 우리는 다양성과 복잡성에서 다시 하나의 통합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랑 (Philo) 은 지혜, 그리고 삶 그 자체와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지혜에 대한 사랑은 한 인간이 적극적으로 삶의 원칙들을 알아가고 그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연과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철학은 인생을 설명하는 이론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끊임없는 변화를 경험하는 능동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가치들을 깨닫게 되는 윤리적 삶의 태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혜에 대한 사랑은 바로 인간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인생의 원천인 지혜에 더 가까워지며 전세계에 화합과 유대의식을 퍼뜨리도록 돕는 원동력입니다. 철학자는 타인들과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철학자는 인생, 그리고 그에 속한 요소들의 공통된 본질에 더 가까워지려는 사람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성한 중심지인 델포이 신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고 세계와 신들을 알라.” 철학은 지혜로 통하는 다리입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 즉 문화, 예술, 의례, 그리고 정치 전반에 걸쳐 모든 영역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세계에서 철학에 전념하며 인류의 고전적 가치들로 다시 회귀할 것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선함에 대해 확신이 있으며 이 세상에 창조된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인생 자체에 마음이 열려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경이로운 감동이 찾아올 수 있는지요! 이는 인생 자체가 기적이므로 인생에 다른 기적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오는 경이로움입니다. 플라톤이 철학의 관점에서,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과학의 관점에서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에도 바로 이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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