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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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런던의 지하철은 다른 기차나 전철, 혹은 버스와 마찬가지로 기분 좋은 유쾌함의 장소라기보다는 외로움과 이별의 장소입니다.

모든 나라에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제 경험상 남미나 인도 아대륙, 그리고 중동의 경우 여행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과 인연을 맺는 것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유럽에서는 좀 더 어려워요. 그리고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아시아지역에서는 사람들을 보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만 보고 있고 그러한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요.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관습이나 규칙을 따르지 않아요. 특히 그런 규칙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일 때 더더욱 그렇죠. 아이들은 그들의 마음 가는 대로 또 필요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필요는 언제나 통합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실제로 오늘날 점점 더해가는 분열과 이해심 부족 현상을 경험할 때, 또 민주주의가 주관적인 의견들에 힘을 실어주는 도구로 전락해버릴 때, 우리는 연대하고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거나 혹은 재시작해야만 합니다. 또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낯선 사람”은 보통 그저 우리가 아직 모르는 형제라는 것을, 또 우리가 모두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을 수 있음에도 같은 운명을 공유한다는 것을.

It is thus urgent to regain a Heart of a Child. But how ? And is it really possible?
따라서 우리는 아이였던 시절에 가졌던 마음을 다시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로 가능하긴 할까요?

가능해요.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나이는 생물학적인 연수로 계산되지 않고 희망, 상상력, 그리고 창의력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꿈을 꾸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한, 하루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들을 발견해내기 위해 배고픈 상태로 일어날 수 있는 한, 우리는 젊어요.

이것이 우리 중 누군가가 80살이 되거나 혹은 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젊을 수 있는 이유예요. 또 20년 혹은 그보다 더 적은 삶을 산 노인들을 만날 수도 있는 이유예요. 젊다는 것은 삶의 한 방식이에요. 그리고 영원한 청춘은 모두에게 주어져요.

But being alive is also being a rebel, and not everyone has the will and the courage to live
하지만 살아있는 것은 저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삶을 살 의지와 용기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