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한 갈망

야론 바질레이 (뉴아크로폴리스 북인도) 지음 김희진 옮김

변화에 대한 갈망

오늘날 세계에는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세계가 변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고, 논란이 되는 쟁점들을 해결할 수 있길 원하며, 문제를 지적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효한 해결책을 제공하고 실현시킬 수 있다.

오늘날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직면하게 될 세계 전반적인 문제들을 열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직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쉽게 발견되는 문제들의 근원이 될만한 더 큰 문제들도 있을 수 있다. 그 중 예를 들자면 무지와 물질주의가 있다.

여러 분과들로 이루어진 유엔과 같은 세계기구들은 때때로 당초 설립 목적과는 다른 의제를 제공하거나 필요한 직접적인 조치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 부족, 지구 온난화, 파괴적인 무기 및 빈곤 증가와 같은 몇가의 문제들은 그 어떤 해답도 나오지 않은채 남겨져 있다. 우리는 스스로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반면, 권력자들은 종종 이 문제들을 냉소적으로 부인하는듯하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조직들이 있다. 하지만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또는 더욱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기에 그들의 노력만으로 근절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절망에 빠질 수는 없다. 인류가 성장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잃는 것 또한 철학적이지 않다. 지혜에 대한 사랑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한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있던 희망은 영원히 항상 사람들 곁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인류가 변화를 원하지 않는 채로 남아있다면 희망만으로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만들고, 올바른 방향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 기관을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아마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필요함에 있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과연 충분한가? 세계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인 사람 자체는 변함이 없는데 새로운 협정에 서명하고 따르는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우는 정말로 함께 행동하고 가장 확실하게 필요한 대책을 시행하는 것에 동의 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세계에서 다른 나라들이 저항하는 와중에 일부 지역에서만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적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실제로 큰 규모의 재난이 닥쳐서 어쩔 수 없이 행동해야 할 수 밖에 없는 큰 재난이 닥칠 때까지기다려야 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헐리우드 각본가들이 자주 제안하듯 외계인들과 맞서기 위해서야만 연합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동은 우리의 지식, 예측하고 이끄는 능력이 아닌 큰 어려움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대처해야 하는 절박함은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보고자 하는 변화에 대한 간디의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고 싶다 면 스스로 그 변화가 되어야 한다. 외부 글로벌 솔루션에만 전념하기보다는 개개인의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완벽한 시스템이 준비되더라도 시행하는 사람이 그대로이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 변화’가 더 나은 변화라는 의미는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광신자가 아닌 이상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하지만 명확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변화를 위한 변화는 더 최악의 상황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는 우리와 주변 세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한다. 뉴 아크로폴리스(New Acropolis)의 창립자인 호르헤 엔젤 리브라가(Jorge ÁngelLivraga) 교수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새롭고 더 나은 인간들로 인해 새롭고 더 좋은 세상을 추구한다고한다.

더 나아진 우리 자신을 상상할 수 있을까? 추가적인 가젯, 기술, 그리고 더 엄격해진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닌, 플라톤과 그 외의 존경받는 철학자들이 말한 정의, 진실, 미와 선의 원형에 더욱 가까워진 새로운 미덕과 능력, 더 높은 인식 등을 갖춘 발전된 자신의 모습 말이다.

우리 스스로를 더 잘 상상할 수 없을까? 만약 가능했다면 우리는 이미 무엇을 할지 인지하고 그것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임무는 그 길을 걷고, 이미 알고 는 것에 비추어 매일 행동하고,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갈망을 서로 공유하고 듣고자 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이 즉각적인 해결책은 아니며, 이러한 해결책이 존재한다고 해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효과적인 해결책이자 유일한 해결책일지 모른다. 사람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간에 복합적이고 복잡해 단순하기가 쉽지않다. 하지만 희망에 대한 유는 항상 있다. 왜냐하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단순히 허공으로 사라지는 육체와 뼈가 아닌, 엄청난 영광으로 향하는 단기적인 단계이자 하늘과 땅, 영혼과 물질 사이에 놓여진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삶의 방식으로써 철학은 훌륭하고 귀중한 기여를 한다. 철학은 우리를 영원한 삶의 원형에 더욱 가까이다가가게 해주고 활기차게 해준다. 또한 우리의 능력으로 인생은 방향과 목적을 가지고 있고, 움직이고 진화한다는 것을 지각할 수 게 해준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진리(Dharma)라고 부를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운명, 의미 혹은 경로라고 부를 수 있다. 철학은 우리가 따라야 하는 방식과 원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우리가 갖고 있을지 모를 모든 악보다 우리 곁에 항상 희망이 함께 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철학은 모든 그림자를 지우는 빛이며, 세상에 대한 희망이다. 철학자가 되는 것은 미덕을 지닌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철학이 실용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철학이 유일한 실용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심오한 변화는 항상 위에서부터 오기에 변화를 표방하며 자신을 새롭고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은 분명 놀라운 모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