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알 수 없는

Without Words

말로는 알 수 없는

과테말라의 라 안티구아 광장에 있는 아빠와 딸, 오토바이, 그리고 아이스크림이 있는 이 사진을 보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어떤 말을 쓸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사진을 보면 감상에 젖게 돼요. 하지만 제가 느낀 바를 정확하게 말로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어도 적당한 단어를 못 찾겠어요. 왜냐고요? 왜냐하면 제게는 단순한 감정과는 다른 이 감성이 그 어떤 단어들보다 거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이 사진에는 이해해야 할 것이 없어요. 그저 담아둘 것만 남아있지요. 카르티에 브레송(Cartier-Bresson)은 어떤 조화, 혹은 순간적인 평형 상태를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물론 말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니에요. 우리는 언제나 뭔가를 알고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이때 단어는 생각이나 개념을 전달하는 데 꽤 효율적인 수단이 됩니다. 하지만 단어로 이 깊은 감성까지 전달할 수 있을까요? 혹은 단어로 직관을 전달할 수 있을까요? 단어들은 정말로 지성을 담아내는 그릇인가요? 아니면 지성이란 것이 애초에 단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분별력을 의미하는 건가요? 단어는 빛을 낼 수 있나요? 혹은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나요? 아니요.

단어는 예술적 경험을 위해서는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인가요?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위해 꼭 필요한가요? 자연과 하나 됨을 느끼고 명상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가요? 역시나 답은 “아니다”입니다.

단어는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단어들의 뒤에는 전체의 커다란 삶이 있습니다. 의식이 깨어나 고양된 상태에서는 단어를 수단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그에 따라 사는 것 대신에 이를 이해하는 수준에서 끝내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이해하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어요.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만일 어떤 현상에 대한 설명을 이해했다면 더는 그 현상을 경험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까? 저는 아니길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는 것”과 “사랑을 시작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선택은 뻔할 것입니다. 사랑은 경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말로는 사랑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어요. 아무리 세심하고 정확한 단어들을 사용한다고 해도요.

이 감성,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래서는 안 됩니다.